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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연구비만 100억원 받은 과학자
이상준 생체유체연구단장
우리나라 교수 한 명이 1년간 받는 연구비는 얼마 정도일까?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08 대학 연구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수 1인당 평균 연구비는 5500만원이다. 100억원을 연구비로 지원받으려면 약 200년간 연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23년간 국가연구비만 100억원을 지원받은 과학자가 있다. 바로 포스텍 기계공학과 이상준 생체유체연구단장이다.

그는 20대에 선배들을 제치고 박사 학위를 땄을 뿐 아니라 국내 박사학위로 포스텍 공채 1기 교수가 됐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신진연구, 국가지정연구실, 도약과제 등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연구과제를 거의 다하다 보니 그동안 받은 연구비가 거의 100억원 정도다. 그는 2008년부터 창의과제에 선정돼 생체유체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기계공학이 중심이지만 연구의 폭이 꽤 넓은 편입니다. 그래서 국가연구도 많이 했고, 산업 지원 연구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경험이 생겼고, 이런 것들을 모아 융합연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체유체는 생물체 내에 흐르는 혈액이나 물, 산소 등을 말한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생물학, 유체역학 등 다양한 학문이 필요하다. 융합연구가 꼭 필요한 것. 이 단장은 “그간 연구한 것들의 알짜를 모아서 생체유체연구에 투자할 생각”이라며 “혈액순환과 호흡 등 생명과 관련된 흐름을 잘 관찰하면 질병 조기진단이나 새 치료법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오기까지]MRI로 혈액 움직임 측정, 연구인생 술술~

“밀양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어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죠. 저도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니 친구들의 수준이 저와 달랐습니다. 그때부터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리고 약 30년간 한 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이상준 생체유체연구단장을 일러 주변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성실하다’고 말한다. 1년 내내 9시에 출근해 11시에 퇴근하면서 늘 새로운 주제를 찾아 연구하기 때문. 새롭고 창의적인 주제를 찾아 연구하는 것은 대학원 때 지도교수의 영향이었다. 그를 지도했던 정명균 KAIST 교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했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해줬다.

당시 정 교수의 실험실은 학생들이 많아 실험장비 경쟁이 치열했다. 보통은 선배부터 차례대로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단장에게는 그 순서가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전자과 실험실에서 새 방법을 찾게 됐다.

“친구 실험실에 갔더니 자기공명영상장치(MRI)가 있더라고요. 제 전공이 기계공학 중에서도 유동, 움직임을 측정하는 것인데요, 저는 혈액의 움직임에 관한 실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MRI로 전체 속도를 한번에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게 되더라고요.”

이 단장은 MRI로 혈액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고 1984년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생물체 내부에서 움직임이 있는 혈액이나 공기 등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와 인연을 맺은 것. 그는 “선진국에서 MRI로 생체유체의 이미지를 얻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니까 약 15년을 앞선 셈”이라며 “이때부터 생체의학 이미지의 중요성을 알고 시작했으니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2008년부터 이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모세 혈관을 포함한 유정란의 혈관을 시각화한 모습. 연구단은 유정란 내부의 심장에서 혈액이 흐르는 모습을 관찰해 생체유체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새 분야 개척은 이 단장의 인생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이 단장의 박사 논문이 포스텍의 초대부학장 이정국 교수 눈에도 띄어 공채 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포스텍 교수가 되겠다고 원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없더라고요. 병역문제가 있어서 포항기계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죠. 그런데 이정국 교수님이 연락한 겁니다. 병역문제 때문에 교수로 채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자 이 교수님이 포스텍과 포항기계연구소의 자매결연까지 추진해가며 저를 교수로 채용했죠.”

기계공학에서 흐르는 물질, 즉 유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실험보다 수치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단장은 유체와 관련된 실험으로 논문을 썼고, 방법도 새로운 것이라 이정국 교수의 눈에 띈 것이다. 이 단장은 “이 교수와는 부자지간처럼 동반자처럼 많은 것을 함께 했다”며 “여기에 오기까지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너머]가속기 등장, 새 국면 시작!

MRI는 지금도 20억원이 넘는 비싼 장비다. 갓 연구를 시작한 교수가 학교에 MRI를 사달라고 요청할 수 없었다. 생체유체를 보기 위한 실험에는 장비가 필요하니 이 단장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생체유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유동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2000년 4월 즈음, 비행기에서 신문을 펼쳤는데 모기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영상이 있더라고요. 당장 신문을 오려서 주머니에 넣었죠. 비행기에서 내려 기사에 나온 윤화식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이 단장은 윤 박사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했다. 생명체 내부의 혈액이나 산소 등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고, 그 연구에 가속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것. 당시에는 가속기로 실험하겠다는 것도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 단장의 아이디어는 2001년에 포스텍에서 지원하는 연구에 선정됐고, 가속기의 엑스레이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유동의 속도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은 2003년 ‘저널 오브 어플라이 피직스’에 실렸다.

엑스레이를 통해 본 암모기 내부의 상세한 구조. 연구단은 피 빠는 모기의 머릿 속 혈액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최근에는 엑스레이를 이용해 ‘암모기가 피를 빠는 메커니즘’도 밝혔다. 암모기가 피를 빨 때의 모습을 관찰해 모기 머릿속 펌프 2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힌 것. 이 단장은 “모기 펌프의 탁월한 성능을 모방하면 바이오칩을 개발해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다”며 “이 내용은 미국물리학회보에서도 기사로 다룬 바 있다”고 말했다.


[나의 성공담]전체를 보는 눈으로 융합연구!

생체유체연구는 다양한 분야가 융합돼 진행된다. 유체역학과 생물학은 물론 화학, 약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결할수록 활용가능성은 늘어난다. 결국 생물체 내부에 존재하는 혈액, 물 등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모방하면 의학적․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단장은 “여러 기술을 묶어 융합연구를 크게 하려면 전체를 파악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어 이 연구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체유체연구의 미래상]

생체유체연구단이 그리는 첫 번째 미래상은 심혈관 질환 조기진단과 치료다. 심혈관 질환은 혈관 안에 노폐물이 쌓여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병이다. 이 질환은 전 세계 사망원인 1위로 꼽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병원에 있는 엑스레이 장비로는 움직임을 볼 수 없지만, 생체유체연구가 더 진행되면 혈액의 흐름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을 관찰하면 어떤 혈관이 막혔는지 전체적인 속도는 어떤지 알 수 있다. 이 단장은 “혈액이 흐르는 속도를 분석하면 근본적인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체유체연구는 신재생에너지와도 연결된다. 식물의 물관에서 액체의 흐름을 관찰해 연료전지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것.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를 합성해 전기를 만들고 물을 배출한다. 하지만 현재 연료전지는 수소․산소가 들어가는 통로와 물이 나오는 통로가 효율적이지 못해 전지효율이 낮다. 이 교수는 “생물은 오랜 세월 진화를 거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며 “이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적용하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학은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는 만큼 국가와 인류에 봉사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숨이 끊어지거나 피의 순환이 멈추면 사람은 목숨을 잃는다. 식물 잎도 물이 전달되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결국은 생명체의 순환시스템이 멈추면 생명이 끝난다. 따라서 생명체에 존재하는 유체, 즉 모든 흐르는 물질은 생명유지의 원천이다.

이 단장은 “생체유체는 결국 생명유지를 다루는 핵심 기술”이라며 “이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해 순환기 질환을 조기진단하고 그 기술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연구의 주목적”이라고 밝혔다.

글/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2010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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